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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W. 망 (@ZN_KRAK)

*

...파도가 몰아친다. 

발목을 적실 정도로 깊게 들어온 파도가 모래와 함께 욕심냈던 모든 것을 머금고 바다로 돌아간다. 

마에노 아키는 제 발목을 적시고 돌아간 파도를 보았다. 바다를 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묻혀있는 저 바다 아래를... 

*     *     *

파도가 과분한 것을 탐낸 자의 발목을 삼켜도, 탐욕스런 이는 욕심의 무게에 발이 묶여 피하지 못하리라

*     *     *

쾅! 큰 충격과 함께 들려왔던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큰 파열음. 동시에 필름이 찢겨나가듯 끊겼던 의식. 그때를 기억한다. 그 당시 큰 소리와 충격을 받고 기절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 운이 좋게도 고막이 찢어지지 않았었다. 먹먹하긴 했지만, 귓가에 가득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가 큰 상처가 나지 않았음을 알렸었으니. 이상이 있다면 울리는 파도 소리가 갓 의식이 돌아온 귓가에도 제대로 들릴 만큼 컸다는 것이었다. 저 떨어진 곳에서 제가 사랑하던 부모님이 손을 내뻗으며 무어라 소리치는 것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머리에 직접적으로 가해진 충격과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충격을 받아 넋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야 알아챘었다. 입안을 맴도는 씁쓸하리만큼 짠 바닷물의 맛을, 코를 찌르는 바닷물의 비린 향을, 푹 젖어 무거워진 옷과 머리칼의 무게를. 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앉아있는 제 몸의 반절을 집어삼키는 파도의 차가운 온도를…. 모든 것이 역했고, 비현실적이었다. 바다가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삼키고 있다! 그 사실을 제대로 보고 있고 그것만큼은 제대로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붙드는 차가운 파도는 5살이 이겨내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다에 먹혀 끝내 저 깊은 바다 아래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저는 그를 무력히 바라보는 것 외로 할 수 있다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뿐이었다. 이는 직접적인 경고였을지도 몰랐다. 제겐 누군가를 탐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고 과분한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머리가 좋았다 한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아이가 무엇을 버틸 수 있었겠는가…. 충격을 버티지 못한 머리는 이 기억을, 바다의 경고를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첫 번째 바다는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머금고 들어갔다.

 

그 뒤로 머릿속을 울릴 만큼 큰 파도 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없다 한들 뇌리에 박힌 공포는 남아있었기에 물이 두려웠고, 그렇기에 바다에 가까이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도는 저 멀리서부터 다시금 천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래, 우시로노 후유를 만났던 5살의 날부터. 네가 내 책을 찢어버렸을 때 내가 아예 너와 교류하기를 포기했으면 이런 일까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럴 수 없었겠지. 네가 힘들게 상냥함을 끄집어내어 그런 행동을 해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내가 여전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했던 탓이었다. 내 주변에서 말이 통하는 것은 너 말고는 없었기에 자연스레 너는 내 소중한 사람이 되었고, 5년이 지난 뒤에는 너 한 명이 아닌 너희가 내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너희가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였고 나는 너희에게 가족보다도 가족 같은 존재였으니…. 우리의 나날은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계속 이어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나츠가 제노에 발병했을 때도, 후유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꼭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으니까. 우리 세 명이라면…. 무슨 일이 닥쳐온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결국, 제 손으로 이 모든 것을 부숴버렸지만.

 

맛을 기억하는가? 씹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가….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끊어버린 아이의 삶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내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그 기억이 아무리 제 목을 조른다 한들 내게는 그것을 잊을 자격조차 없었다. 그 아이를 입으로 욱여넣으며 세계를 원망했다. 그저 어쩌다 바다를 한 번 봤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냐며 눈물을 흘렸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투명한 눈물이 턱에 다다랐을 때는 입가의 피 탓에 붉은 기가 돌았고, 이내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바닥을 흠뻑 적신 피에 섞여 완전한 붉은 색을 띠었다. 무거웠다. 온몸이 너의 피에 적셔진 탓에 팔이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당장 이 팔을 들어 올려 너를 잡아 뜯어 삼키고 있는 입을 막아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력하게 너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이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감정에 휘둘리는 제 몸뚱어리가 너를 씹어먹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내는 것뿐이었다. 너의 한 조각마저 전부 사라져 피 웅덩이에 손을 짚으면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라기엔 미묘했다. 너를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작게 들려와서 제 몸이 흠뻑 적실 정도로 다가와서야 제가 알아챘다는 쪽이 더 적합했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큰 파도 소리였다. 몰려오는 비린내와 물에 휩쓸린 듯 갑갑한 기분을 느끼고 나서야 소녀의 죽음을. 파도가 다시금 제 소중한 존재를 머금고 저 너머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다 못해 최악으로 치닫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소중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제게는 과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제 과분한 욕심 탓에, 제가 관계를 탐해 너희를 끌어들인 탓에 둘 다 이리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몰려왔지만 제가 방금까지 누구의 흔적을 입에 담았는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어 그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려냈다. 아아, 파도가 다시금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구나.

*     *     *

비명과도 같은 네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고, 이어 몸통과 얼굴에 뜨거운 액체가 흩뿌려졌다. 이미 비린내로 진동하는 방에 오래 있던 탓에 조금 익숙해졌다 여기던 혈향이 한껏 더 진하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 내쉬지도 못한 채로 깊숙이 박혀있는 칼을 한 번 봤다가 시선을 들어 올려 네 눈을 보았다. 왜? 어떻게? 너는 나를 죽였어야 했는데! 죽이는 것이 당연한 결과인데…. 어째서 저 칼이 제 배가 아닌 네 배에 꽂혀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였지만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인지 들리지 않았다. 듣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조차 잘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너의 생사뿐이었다. 제 위에서 계속 제 셔츠와 백의를 붉게 물들이던 너는 기어이 무력하게 옆으로 스러져 내렸다. 아아, 안 된다. 아아, 안 돼. 츠기노. 머릿속에서 안 된다며 수백 번 외쳐보아도 말을 단어를 내뱉는 방법을 잊은 듯 단말마만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당장 몸을 일으켰다가도 너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무력하게 무너졌다. 고작 하나의 상처로부터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와서 굳어 기는 핏웅덩이 위로 새로운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저에게 이것이 너의 피이고 네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려는 것인지, 바닥을 짚은 손까지 흘러든 피는 너무나도 뜨거웠다. 두려움인가, 절망인가. 혹은 후회인가….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서 피어오른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비굴하고 조용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었다. 숨을 고를 생각을 하지 않은 탓에 폐가 버거움을 느꼈지만 제 손을 적신 피가 고통스러울 만큼 뜨거웠기에 크게 신경 쓸 바가 되지 못했다.

 

“츠기노, 죽지 말아줘…. 더 이상, 누군가가 죽는 걸 보긴 싫어….”

 

후유도, 이제는 죽어버렸단 말이야. 내가 조금 더 빨리 기억을 되찾았으면. 기억을 되찾고 조금 더 빨리 행동했으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던 녀석을 그렇게 잃어버렸는데. 이렇게 또 널 잃을 수는 없단 말이야…. 머릿속에서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이 하나하나 재생되듯 떠올랐다. 고작 세 명의 기억, 이제는 네 명…. 여기의 너와 관련된 기억이 추가되는 걸 원치 않았다. 너만은 어떤 방법으로든 좋으니 살아남아 줬으면 했다. 하지만 너는 내 생각보다 잔인할 만큼 상냥한 동시에 내 생각보다 강해서, 결국 나를 절망에 밀어 빠트렸다. 아아, 이대로면 또 소중한 사람이 죽어버려. 네 명 중 세 명이 저에 의해 떠나갔을 때 더 늘어나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겨우 추가되었던 것마저 나를…. 더 소리를 들어도 반응할 수 없는 몸뚱어리에 애원하듯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죽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츠기노……!!”

 

츠기노…. 이제는 들을 사람조차 남지 않은 너의 이름을 허망하게 부르짖는다. 이리 한을 담아 너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도 네가 죽어가고, 기어코 죽음에 이르기까지 저를 무력하게 잡아두었던 것은 대체 무엇인가.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머리가 너의 상태를 보고 내린 진단 탓인지, 이럼에도 살리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에서 우러나온 두려움인지…. 아니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차올라 제 몸을 적신 무언가일지. 이는 무엇인가? 무언가의 감정으로 치부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전력으로 거부한다. 어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나와 결국 입안으로 들어간 눈물은 짠맛이 났다. 손을 가득 적신 피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벌써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제 몸을 흠뻑 적신 것은 이것들이 아니었다. 바닷물도, 그 아이의 피도 아냐.

…죄.

아아, 그래. 죄다! 두 명, 한 명, 그리도 다시 두 명…. 제 탐욕에 휘둘린 다섯 명의 죽음이 내 죄가 되었고, 한껏 쌓아 올려진 죄가 파도가 되어 나를 적셨다. 나의 탐욕이 곧 그들의 죽음이고, 그것이 곧 나의 죄이니…. 24년간 층층히 쌓아 올려진 죄로 이루어진 파도 앞에 제가 무력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물론 이가 말이 되는 답안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답도 아님을 안다. 하지만 이것이 제 탐욕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이 모든 일을 대체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누굴 원망해야 하는가…. 답을 낼 수 없다. 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것이 맞는 생각이라 결정을 내렸다. 그래, 나의 잘못이지…. 제가 바라는 것이 과분한 욕심이고 죄라는 것을 알아챈…. 너희를 잃은 그 사건 이후 부러 소중한 사람을 더는 만들지 않았다. 후유는 여전히 소중했지만, 더는 그런 관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리의 관계가 마냥 행복하질 날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여겼기에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죄책감에 스스로 거리를 벌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여 피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더 피한다 한들 가만히 내버려 둘 후유가 아니기도 했지만.

 

문제는 너였다. 어느 날 시설에 들어온 너는 타 환자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기에 제 호기심을 유발했고, 이어 전담이 되어 너에 대해 알아가고자 노력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아이가 생각나게끔 만드는 너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환자인 너의 전담 의사로서 알아야 했기에 그런 것이었고 별다른 사적인 감정은 없었지만, 너와 상담을 진행할수록…. 네가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란 믿음이 생길수록 너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되 네가 내 소중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감정을 미루는 데 노력했었다. 이 사태를 겪고, 기억이 돌아온 직후에도.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네게 쌓아온 감정을 어찌 미룰 수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내게 보여줬던 상냥함과 굳은 의지를 좋아하지 않는 방법 따위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한다면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부정할 수는 있었을 수도 있지만, 후유마저 차갑게 식었을 때는 너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나는 네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기에. 아니, 이미 무너졌거나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모든 사람을 잃었으니 두 사람도 아니고 너 한 명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너를 치료해서, 다른 사람들은 바라지도 않고 딱 너와 지내기만 한다면…. 넷이나 잃어놓고도 또다시 그리 욕심을 부렸고, 결국 이 욕심이 널 죽음에 몰아넣었다.

 

어디선가 바닷소리가 들려온다. 작은 방에 있을 터인데도,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낄 만큼 크게…. 또 바다가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갔구나. 바다가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고, 또다시 나만이 파도가 모래를 내뱉고 다시 머금어 사라지는 물가에 남아있구나. 이제는 온기가 반쯤 흩어졌을 너를 한 번 시선에 담았다가, 방 한쪽에 놓여있는 장치와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제 친구의 마지막 흔적이자 단 한 명밖에 남아있지 않던 제 사람을 데려간 나의 증오…. 비명과 의미 없는 신음만을 흘려내던 제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을 줄곧 흘린 탓에 숨이 막혀 꺽꺽 대면서도 웃는 그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제 꼴이, 이 모든 상황이 우스웠기에…. 그래, 나도 바다로 가자. 어차피 나의 욕심은 그칠 줄 모를 테니 또 누군가를 탐하고 희생시킬 바에야 내 모든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 그들과 함께하자! 이미 바닷속에서 흩어지고 곧 흩어질 이들뿐이지만, 그 흔적들을 끌어모으기만 한다면 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과분한 것들을 껴안는다. 그곳은 이미 바다 아래일 터이니 내게서 그들을 뺏어갈 파도는 없을 테니까. 그래, 저 바다로 내려가자. 그곳이 나의 세계인 거야. 그들이 있는 곳이 곧 나의 세계이니, 더 나의 사람들이 없는 이곳이 거짓된 것이다. 거짓이 되어줘. 그리고 거짓이 됐다면 거짓말을 싫어하는 너를 위해서, 이 거짓이 괴로운 나를 위해서…. 부숴버리자. 모두….

 

"거짓말이면 부서져. 전부 화려하게 부서져 버리라고. 전부, 전부, 전부 아름답게…."

 

안다. 이 세계가 절대 현실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신도 그것을 영원히 현실로 여기지 못할 거리란 것을. 그런데도 나는 계속 부서질 세계를 끊임없이 만들어 욕심을 채우리라.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알고, 계속 부서질 것이란 사실에 고통받지만…. 그래. 그것이 제 탐욕과, 그에 휘둘려 죽어 나간 이들에 대한 속죄가 되리라.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따라가자, 저 파도가 나의 모든 것을 가지고 돌아간 저 바다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질투

w. 해이 (@Celestialrust) 

날이 부쩍 추워지기 시작한 이래로 츠기노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의미 없이 먼 곳을 응시한다거나, 불렀을 때 반응이 반 박자씩 늦게 돌아온다거나, 지친 목소리로 말을 띄엄띄엄 한다거나……. 아무리 눈치가 없는 인간이어도 곧바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였다. 하물며, 바로 옆에서 그를 쭉 지켜봐 온 보호자라면 혹여나 병이 재발한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츠기노, 안색이 안 좋은데.”

어느 날은 보다 못한 마에노가 슬며시 운을 뗐다. 그의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이었다. 잿빛 하늘에서는 싸락눈이 내리고 창 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은 실내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한참 동안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던 츠기노가 마침내 창가에서 시선을 떨어뜨렸다. 어둠이 깊은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새하얀 낯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억지로 미소 짓는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던 듯, 입술이 잠깐 달싹거렸지만 츠기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명백히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을 뜯어보던 마에노는 고민했다. 어디까지 파고드는 게 적정선인가.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아이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선생님, 어디 가?”

마에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츠기노는 다른 화제를 던졌다. 마에노는 대화의 궤도를 다시금 원점으로 돌리기 전에 그에게 어울려주었다.

“응? 어제 얘기했지 않나. 코치 녀석 보러 간다고.”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그건 아니지만. 뭐, 정기 검진 같은 거지.”

다분히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가라앉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곧, 다급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안 가면 안 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본심. 츠기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숨기지 못한 감정의 파편을 주워 담으려 츠기노는 횡설수설하며 사과했고, 뱉은 말은 수습하기 위해 마지막에는 “잘 다녀와.”라는 인사까지 남겼다. 마에노는 일련의 대화에서 그의 변화를 관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가장하려고 드는 노력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그럼. 선생님보다 문단속도 잘하는 걸.”

“네가 괜찮은지 묻는 거야, 츠기노.”

추궁하는 대신 에둘러 묻자 츠기노는 뜸을 들였다. 꾹 다문 입술이 제법 고집스러웠다. 마에노는 인내했다. 그는 아이들을 잘 다루었고, 몸집이 다소 크긴 하지만 츠기노 역시 아이의 범주에 들어갔다. 어른스러운 척 굴어도 마에노의 눈에 비친 츠기노는 아이였다.

독차지하던 부모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긴 아이처럼 츠기노는 경계심을 보였다.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머리가 커서도 저런 경향을 보이고는 했으므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도 아니었다. 과도하게 보호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성이 지속되면 교정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지금껏 무탈하게 지내왔다. 그의 모든 이상행동은 겨울에 들어선 뒤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보인 현재의 반응은 근본적인 원인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제노’의 치료가 아닌 ‘마음’의 치료는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꾹꾹 눌러 담아 억지로 봉합시켜놓았을 뿐, 저 아이가 품고 있는 상처는 너무 깊었다.

“……안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마에노는 외투를 도로 걸어두고 휴대폰을 꺼냈다. 짤막한 메일을 남기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외출은 취소였다. 외래진료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창가를 지키던 츠기노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 이내 쪼르르 다가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선생님. 나, 겨울이 싫어.”

나지막하게 떨어지는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츠기노는 옛 이야기의 서두를 던졌다.

“그래.”

“춥고, 외롭고,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다 죽여 버리고 싶었으니까.”

살벌한 말을 담담하게 내뱉으며 츠기노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외부의 위협에서 몸을 지키기라도 하듯 둥글게 만 등을 웅크렸다. 상냥한 손길이 등을 가만히 다독여 주었다. 그게 안정을 가져 주었을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이어갔다. 불행으로 점철된 과거. 정신적으로 자라지 못한 가엾은 청년의 유년기.

“비참하다고 느낀 것 같아.”

그렇게, 느릿하게 떠올리는 기억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에노 또한 훔쳐본 적 있는 기억의 단편이었다.

겨울은 싫었다. 추운 날씨에는 바깥을 배회하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는 집에서 자주 쫓겨났다. 이유는 없었다. 기분이 나빠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네 존재 자체가 죄악이기 때문에. 부모가 폭언을 쏟을 때면 형제는 그들의 뒤에 숨어 아이를 비웃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아마 서러움이었을 테다. 그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질투였다.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겪는 차별과 악의는 불합리했고, 마침내 규칙을 학습하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답을 찾지 못할 의문을 남겼다.

‘왜 나는 사랑 받지 못하는 거야?’

돌아갈 곳 없는 아이는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몸을 녹일만한 공간은 없었기에 계단 근처에서 쪼그려 앉아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하릴없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으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갖지 못하는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제가 미웠다. 자신을 쏙 뺀 채로 행복을 누리는 가족이 미웠다.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만큼, 그들을 시기하고 증오했다. 모순적인 감정에 지배되면서 아이의 세상은 점차 위태로워졌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스스로 귀가를 늦게 했다. 적당히 패스트 푸드점에서 끼니를 챙겨 먹고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면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덕분에 예전만큼 겨울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혹한의 계절이 새긴 상흔은 오래도록 남아서, 츠기노는 여전히 겨울을 싫어했다. 제노가 발병한 이후에도 그랬다. 오히려 계절은 살인 충동의 도화선이 되어주었다.

해가 질 즈음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갔다. 유치원생 아이와 함께 귀가하는 가족, 팔짱을 끼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 연인,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오락실로 향하는 학생들……. 그 속에서 츠기노 하루는 덩그러니 서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로, 제자리에서 굳은 석상 마냥.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문득, 이런 식으로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의식 아래에 처박아둔 시꺼먼 감정이 스멀거리며 기어 나왔다.

거리의 이름 모를 인간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부러웠다. 부럽고, 너무도 부러워서, 불행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똑똑한 츠기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시기심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그의 마음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감정의 잔재. 그것을 동력원으로 츠기노 하루의 세상은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공중으로 피어올랐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광기 서린 눈동자가 목표물을 찾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러고 싶은 날이었다. 폭력을 분출하지 않고서는 이 지독한 비참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불특정 다수를 향한 질투와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비정상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빚어냈다.

“……나를 사랑해 줘.”

사람을 죽이는 건 뇌에 강한 자극을 안겨다 주었지만, 그 순간이 끝이었다. 칼을 휘둘러 여린 살갗을 찢어발기고 시체를 집어삼켜도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았다. 그저, 손에 피를 묻히며 하루하루 말라갈 뿐이었다.

그는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충족하지 못할 욕망을 갈구하며 정처 없이 방황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누군가의 비웃음이 실려 왔다. 그 속에서 츠기노는 마치 우는 것처럼 웃었다.

이후에는 어땠더라. 생면부지인 타인은 물론이고 부모형제까지 죽인 살인귀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달고 시설로 끌려왔던가. 츠기노는 어중간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길게 말해봤자 좋을 것도 없었다. 어차피 피상적인 부분은 담당이었던 마에노도 알고 있는 사실일 테고 말이다.

겨우 스무 해 남짓한 짧은 생에서도 계절은 수십 번이 넘게 바뀌고, 기억 또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겨울은 여전히 싫었다. 이제는 괜찮으리라고 여겼건만 전혀 아니었다. 잘 유지되고 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 순간부터 츠기노의 무의식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잊고 지내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설상가상으로 그 때 느꼈던 감정까지 의식을 좀먹고 들어갔다.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심층 너머의 영역이었다.

어린 하루가 속삭였다. 선생님은 그 하얀 아이를 돌봐줄 테니까, 이제 너는 버려질 거야. 사랑받을 수 없어.

이성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츠기노는 불안했다. 삽시간에 그를 덮쳐온 유년의 기억들은 최악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외부의 존재에 날을 잔뜩 세웠다. 겨우 정착한 일상을 해치려는 소동의 중심에 서 있었으면서, 소중한 사람까지 앗아갈 것 같은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가지 말아 달라는 투정이 튀어나온 순간, 츠기노는 자신이 아직도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아야만 했다. 일찍 철이 들어야 했을 뿐, 내용물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선생님.”

“응?”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츠기노는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제대로 폐를 끼쳐 버렸다. 아직도 마음속이 울렁거렸다. 이래서는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빈말로라도 할 수 없었다.

“츠기노, 너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

마에노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츠기노의 머리를 꽁, 하고 때렸다. 이어지는 말은 현실을 꿰뚫으면서도 퍽 다정한 한 마디였다.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어. 시간이 필요한 일이잖아.”

“으응, 그렇지…….”

“그러니까 이 녀석, 너무 기죽지 마. 괜찮으니까.”

츠기노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이 어둡고 습한 감정에 당장 작별을 고하는 건 불가능했다. 트라우마란 당장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에노가 자주 말해준 내용이기도 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시꺼멓게 얼룩진 감정을 수면 아래로 밀어 넣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수면은 여전히 불안정한 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동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초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이것으로 된 거다. 그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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